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분명한 장소에 매우 분명한 방식으로 나타나시길 기대한다. 바다가 갈라진다든가, 기적적인 치유라든가, 모건 프리먼과 비슷한 신령한 목소리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성령은 종종 우리 삶 속에서 훨씬 더 미묘한 방식으로 역사하신다. 조금만 더 의식하고 주의를 기울인다면, 무언가 의미 있고 거룩한 것을 위해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매일매일의 삶을 침범하시는 하나님을 분명 목격하게 될 것이다.
온 가족이 하루 종일 집을 구하러 다니던 어느 날, 우리는 이제 그만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옆 동네에 새로 생긴 무한리필 스시집이 생각났다.
엄청난 양의 롤을 시킨 우리는 주문한 음식이 식탁만한 나무배에 실려 오는 것을 보았고, 그걸 바라보는 우리 눈은 그 배보다 더 커졌다.
배가 많이 고팠던 우리는 이내 음식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서서히 포만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배 위에는 여전히 많은 롤이 있었다. 이 식당에는 먹지 못하고 남기는 스시 하나당 1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벌금을 내기 싫었던 우리는 계속해서 꾸역꾸역 음식을 삼켰다. 영겁과 같이 느껴졌던 억지 식사가 끝난 후에도, 상 위에는 여전히 많은 롤이 남아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겐 광명이 비추지 않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식탁.
과도한 음식. 낭비.
나도 안다. 나도 안다.
억지로 음식을 씹어 넘길 때마다 마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너 말이야, 어떤 나라(어느 나라든 집어넣으면 된다)에는 네가 불평하는 그 음식을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 알지.”
잠시만 판단을 유보해 줬으면 한다… 왜냐하면 더 심한 일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몰래) 남은 스시를 냅킨에 싸서 주머니에 넣기 시작했다(말하지 않았는가, 더 심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혹시 아내가 못마땅해하지는 않은지 확인차 잠시 고개를 들었던 나는, 그녀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우리의 시선은 잠시 멈췄고, 곧바로 엄청나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얼마나 심하게 웃었는지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애써야 했고, 입안에서 밥알이 튀어나오려 하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아내와 나는 두 배로 웃었고, 우리 아들도 부모가 웃는 모습을 보더니 함께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가라앉자 다시 포만감이 찾아왔다. 단지 육체적 포만감이 아닌 — 그런 면에서는 과하게 배불렀다. 하지만 내 영혼과 마음마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꼈다.
마치 무슨 유체 이탈을 체험하는 것처럼 우리 세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가운데(식탐을 숨기려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다), 내가 받은 넘치는 복으로 인해 벅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더 바랄 것이 뭐가 있겠는가(시간을 되돌려 스시를 조금만 덜 시켰으면 하는 것 빼고)? 나는 진정으로 큰 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매우 평범한 순간이었지만 너무나 심오한 순간이기도 했다. 바로 이 시간 이곳에 주님께서 임재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할 때
하나님의 영에 관해 가장 좌절되는 점이 하나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잘 보이고 분명한 곳에 나타나시길 기대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확실히 만날 것 같은 시끄럽고 노골적인 장소를 찾는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임재를 선포하며 화려하게 그곳에 나타나시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강한 바람이나 사나운 불이나 대단한 지진 가운데서 찾곤 한다. 하지만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열왕기상 19:11~13), 우리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마음을 쏟고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 성령이 충만할 때 기적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성령 충만한 순간은 우리 삶 속의 소소함, 평범함, 그리고 일상에서 발생한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평범한 식사 가운데서 빵을 들어 축사하고, 떼고, 나누는 일들을 통해 완전히 그분을 드러내셨다. 그분의 임재는 특별한 것 없는 옆 도시로 걸어가는 길에서 드러난 것이다.
성령의 임재에 관한 가장 좋은 뉴스를 들으라.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 비범한 사람이거나 초자연적인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문자 하나.
수술 후 회복 중인 식구가 있는 집에 가져다주는 한 끼 식사,
좋은 친구와 만나며 마시는 커피 한 잔,
동료들과 함께 먹은 점심 한 끼,
그리고 바로, 몰래 주머니에 스시를 채워 넣다가 배우자와 눈이 마주친 진짜 우스꽝스러운 그 순간과 함께 나눈 웃음이 모두 성령 충만이요 거룩의 순간들이다.
주님의 임재는 언제나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우리가 그분의 공간을 마련할 때 성령님은 우리를 찾아오신다. 실제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깨닫고 있는가? 우리는 집중하고 있는가? 우리는 마음을 쏟고 있는가?
조셉 유는 When the Saints Go Flying in(성도가 날아들 때)의 저자입니다. 그는 서부 해안 출신으로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휴스턴의 모자이크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의 블로그 josephyoo.com에서 그가 쓴 더 많은 글을 만나보세요.